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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하나님이 귀히 여기는 두 가지

        작성자 이경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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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2020.07.29

      아침마다 마가복음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마가복음 14:3~9을 묵상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예루살렘 근처 베다니에 오셨을 때의 일화를 소개합니다. 베다니는 예루살렘 동쪽으로 감람산만 넘어가면 되는, 걸어서 30분이면 갈 수 있는 마을입니다. 베다니에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사는 마을입니다. 나병환자 시몬, 죽었다가 살아난 나사로, 나사로의 누이 마르다와 마리아. 예수님이 편히 지낼 수 있는 곳입니다. 

      유월절 엿새전 예수님은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를 하셨습니다.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가룟 유다는 그 값이 삼백 데나리온이라고 합니다. 삼백 데나리온은 당시 일반 노동자가 일년을 벌어야 하는 큰 돈입니다. 그 향유 한 옥합이 한 사람의 연봉과 같은 매우 값진 것이었습니다. 제자 중 가룟 유다는 그 여자를 구제에 쓰면 더 좋았을 것이라며 책망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다"며 "가만 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 여인의 일을 귀히 여기셨습니다. 성경의 다른 본문에 향유를 붓는 사건이 한번 더 나옵니다. 두 사건은 비슷하나 다른 사건입니다. 장소도 다르고, 사람도 다릅니다. 바리새인의 집에서 식사하고 계실 때, 한 창녀가 예수님에게 향유를 가지고 나와 붓고, 머리카락으로 발을 닦아 줍니다. 그 때에도 예수님은 기꺼이 그 모든 것을 받으시며 귀하다 여기셨습니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으나 이 여인은 향유로 내 발을 닦는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 여인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성전에서 하나님께 두 렙돈을 드리는 여인을 보시며 크게 칭찬하셨습니다. 두 렙돈은 가난한 사람이 한끼 먹을 식사비 정도입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이 큰 것을 드렸다고 했습니다. 그 여인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사실 위에 소개한 두 여인의 향유와 두 렙돈은 그 양에서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셋 다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무엇을 이야기하려는 것일까요? '마음'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마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자의 마음이 담긴 것이라면 하나님은 기뻐하며 받으시고, 그를 향해 "귀하다" 말씀합니다. 마음이 빠지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은 받지 않습니다. 10억, 100억이라도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보이는 것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 그 행동에 담긴 보이지 않는 마음을 받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빠진 행동을 '외식'이라고 합니다. 예수님도 '외식하는 자'들에게 크게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을 받으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한 여인의 향유,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그 여인의 마음을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이 여인에게 이 옥합을 깨는 건 과하다 생각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순전한 마음을 기쁘게 받으시고, 그 여인에게 "귀하다"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마음을 귀하게 여기시는 분입니다. 

      두번째로 이 여인을 향해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대제사장에게 붙잡혀 능욕을 당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리라"고 여러번 말씀하셨습니다. 여리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오는 길에도 일반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일반 무리가 믿지 않자, 제자들에게 따로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조차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그 말씀을 누가 믿고 있습니까? 이 여인이 믿고 있습니다. 

      당시 장례 문화에 향유를 붓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향유 또는 향품은 유대인의 장례법 상 왕의 장례식에 사용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유대인의 왕'이라고 적힌 것을 볼 때, 이 여인은 예수님을 왕으로 여기는 겁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이 하신 '내가 붙잡혀 죽으리라'는 말씀을 믿음으로 예수님에게 향유를 붓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그 믿음을 보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에 대해 모두가 믿지 않으려 할 때, 이 여인만은 믿음으로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깨어 드리면서 믿음을 보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귀하다"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을 만났던 백부장이 한 사람있습니다. 믿음이 좋은 이방인입니다. 예수님께 나와 자신의 종을 치료해 달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가자"하시니, 그가 말하길 "주여 저의 수하들도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옵니다. 말씀만 하옵소서." 그렇게 백부장은 돌아갑니다. 예수님은 그를 향해 "내가 이보다 큰 믿음을 본적이 없다"며 그를 귀히 여기셨습니다. 이 백부장이 예수님께 큰 재물을 드린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를 향해 "귀하다" 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이 귀하게 여기는 또 한 가지를 발견합니다. "믿음"입니다. 

      시편에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라고 합니다. 성도는 귀한 사람들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향해 마음과 믿음을 드리며 오늘을 사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그 성도를 향해 "귀하다" 말씀합니다.


      여러분은 성도로 살고 계십니까? 마음과 믿음(중심)을 하나님께 드리며 오늘을 살고 있습니까? 2020년도 반 년이 지났습니다. 반 년을 돌아보며, 나의 중심이 온전히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지 확인해 봅시다. 하나님을 향해 마음과 믿음을 드리고 있다면 멈추지 말고 계속 그리 하십시오. 그렇지 못했다면 다시 중심을 잡으면 됩니다. 다시 하나님께 우리 마음과 믿음을 드리십시오. 하나님을 향하여 선 당신에게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너는 귀하다." 다시 하나님을 향하여 사는 오늘이 되길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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