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20xYVJWWnNjRmxWZWtGNFQxaEJORlF5TlRSYWJHZDRUMVZHVUdKdWFFSmFhMUozVVZaU1dFOVhkR0ZYU0doQ1dtdG9ZV05HY0ZsYVJHaFFZbTVvY0ZscVNrZGxWbkJHWWtWV2JWSlZTVFJhUkU1clRUQXhWVkpxYUZCaWJtZ3hXa1pqZUU5R1JrbGtNMmhQVWtka00xcHJVbmRQUjA1SVVtMDFZVmRJYUVKYWExSkRUMFU1ZFdWSVNtRlhSM2gwV1Zaa1YyTXhjRWxsUlVadFUwaGpNbHByWkRCaVIxWlpaVVZHYlZOSVl6SmFhMlJMVWtac1dWVnRlRzFTVlVrMFdtdFNkMDlIVGtoU2JUVmhWbFUxTWxkclpGZFBSa1pKWkROb1RsZElZekphYTBVNVVGRTlQUT09
        [칼럼] 하나님의 심부름꾼

        작성자 이경민

        |

        등록일 2020.08.27

      하나님은 '주'입니다. 흔히 찬양의 가사에 '나의 주'라는 표현을 씁니다. '나의 주인'이라는 말입니다. 주인의 상대어는 '종'입니다. 주인과 종에 대해 잘 알려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백부장 일화입니다. 

      예수님이 갈릴리 가버나움에 계실 때, 한 백부장이 아들처럼 아끼는 종의 병을 낫게 하고자 그를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고 하셨으나 백부장은 거절합니다.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예수님이 놀라며 그에게 말씀하시며, "이스라엘 중에 이 만한 믿음을 보지 못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백부장의 대답은 주인과 종의 모습을 잘 묘사해 줍니다.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그러니 말씀만 하옵소서." 주인이 말을 하면 종은 그대로 합니다. 종은 주인이 하라는대로 해 놓으면 됩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을 소개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자신을 종으로 인정하는 고백입니다. 가이사랴 빌립보 반석 위에서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베드로의 첫 고백, "예수님은 주인입니다"라는 고백을 한 겁니다. 우리도 '예수님은 나의 주입니다'라는 고백을 합니다. 이 의미는 곧 '내가 당신의 종입니다'라는 고백입니다. 주인은 종에게 말을 합니다. 종은 그 말씀에 따르면 됩니다. 

      주인의 말에 종은 내 생각을 덧붙이면 안됩니다. 이렇게 해야 합니다.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충성된 종은 주인의 말에 100% 완벽하게 순종하는 자입니다. 종은 주인의 모든 뜻과 계획을 알지 못합니다. 맡겨진 역할을 충성되게 하면 그 앞에 큰 그림이 그려지는 걸 보게 됩니다. 

      유럽 여행을 하다보면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있습니다. 락카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입니다. 파란색 락카, 검은색 락카를 막 뿌리는 것 같습니다.  접시를 놓고 락카를 뿌립니다. 손가락으로 문지릅니다. '처음에 저 사람이 뭐하나? 저게 그림이 되나?' 그런데 그림이 됩니다. 우주 속 지구와 태양이 나옵니다. 그 광경을 보며 '저 분은 저 그림을 생각하고 락카 칠을 했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구경꾼인 저에게는 머릿 속에 그 그림이 없었지만, 길거리 화가의 머릿 속에는 저 그림이 머릿 속에 있었던 겁니다. 

      주인과 종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인에겐 큰 계획이 있습니다. 그 큰 계획에 따라 명합니다. 종에겐 그 그림이 없습니다. 왜 이 일을 해야하는지 이해가 안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종은 주인의 말에 순종해야 합니다. 순종하면 주인이 그린 큰 그림을 눈으로 확인하게 됩니다. 그제서야 '아~ 이거구나'하고 무릎을 칠 겁니다. 종은, 심부름꾼은 '왜?'가 아니라 '네'로 대답해야 할 이유입니다. 

      어느날 교회로 한 성도가 교회로 헌금을 하겠다며 전화를 했습니다. 교회 통장으로 300만원이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이 제게 '이건 다 외부로 흘려보내라'는 마음을 줍니다. 헌금하는 성도가 마침 또 한 곳은 지정해 주었습니다. 사택에 화재가 나 뛰어내려 뇌출혈로 수술한 강병구 목사님을 도와달랍니다. 인터넷 검색하면 자세한 기사가 나옵니다. 수요일 오전, 헌금한 성도의 요청을 따라 딸 강혜수(가명)의 연락처를 수소문해 연락하고, 후원계좌로 입금해 주었습니다. 혜수 자매가 '고맙다'며, '얼굴을 보고 인사하지 못하지만 교회와 성도님들의 마음에 감사한다'고 문자가 왔습니다. 

      목요일 오전, 하나님이 재정을 주셔서 성도 네 명과 아산에 있는 한 교회를 찾아갔습니다. 함께 간 성도 중 한 명이 중국에서 힘들 때 자기를 늘 응원해 주던 목사님이라고 했습니다. 이 교회는 설립 9개월이 되었습니다. 현재 성도는 한 명도 없습니다. 더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시지요?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재정으로 15만원 어치 장을 봤습니다. 고기, 복숭아 한 박스, 포도 한 박스, 두유 한 박스, 참깨, 라면, 스팸, 몽쉘, 두유, 멸치 등을 구입해 전달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반전세 개념으로 한달에 20만원씩 월세가 나가고 있었습니다. 봉투에 한 달 월세 20만원을 드리고 왔습니다.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현재의 힘듦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마음에 아쉬움도 남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한 성도가 "오늘 왜 왔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종은, 심부름꾼은 '왜?'가 아니라 '네'로 대답해야 할 이유입니다." 오늘 우리의 방문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지쳐있던 그 목사님을 다시 일으킬 계기가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하는 하나님의 심부름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부름하며 살고 싶습니다. 심부름꾼은 생각이 많으면 안됩니다. 그냥 주인의 생각에, 주인의 말씀에 따라야 합니다. '왜?'인지 몰라도 그 하나님의 말씀과 부르심에 따르는 심부름꾼이길 소원합니다. 심부름꾼은 주인과 함께 기뻐할 날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 기쁨을 누리며 이 미음을 가지고, 앞으로의 목회를 계속하길 소망합니다. 사랑합니다. 










       

      <

      >

      목록

          비밀번호 확인
          글 작성시 등록하신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확인 취소